인공지능이 기계의 몸을 입는 피지컬AI 시대가 미래 산업의 대안으로 부상했다. 미국은 AI 플랫폼을, 중국은 제조·양산 역량을 앞세워 주도권 경쟁에 나선 가운데 한국도 제조 강점을 기반으로 새로운 생태계 구축에 나선다. 하지만 현장 적용 과정에서는 로봇 기술 한계뿐 아니라 전력 인프라 부족, 보안 위협, 법·윤리 기준 공백이라는 과제가 남는다. THE Biz(더비즈)는 미·중 패권 경쟁 속에서 국산 피지컬AI의 생존 전략과 산업 경쟁력을 짚어본다.[편집자주]

지난 6월 이재명 대통령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하이닉스 회장 등과 함께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 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서남권 등에 대규모 신규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사진=연합뉴스
[THE Biz(더비즈)=안채영 기자] 정부가 반도체, 피지컬AI, AI데이터센터(AIDC)를 국가 성장을 이끌 ‘3대 메가프로젝트’로 지정하고 550조원 규모의 민간 투자 지원에 나섰다. GPU 확보와 데이터센터 구축, 휴머노이드 개발 경쟁이 본격화하지만 피지컬AI 시대의 승부는 반도체와 로봇 하드웨어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AI데이터센터를 24시간 가동할 전력, 공장과 물류센터를 연결할 초저지연 통신망, 다수의 로봇을 안정적으로 운용할 충전 인프라가 함께 갖춰져야 산업 현장에서 인공지능(AI)이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AI 성능 경쟁 못지않게 기반시설 구축 속도가 피지컬AI 확산을 좌우할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
◆AI 경쟁의 새 병목은 ‘전력’과 ‘송전망’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달 16일 발표한 ‘2026년 하반기 업무계획’에서 AI데이터센터와 피지컬AI, K-반도체를 3대 메가프로젝트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SK그룹 5GW와 GS그룹 2.4GW, 네이버 1GW 등 민간이 추진하는 초대형 AI데이터센터 건설을 지원해 총 550조원 규모의 투자를 유도한다는 목표다. 전력과 부지, 인허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범부처 태스크포스(TF)와 전담지원단도 가동하기로 했다.
GPU 확보에도 속도를 낸다. 정부가 확보한 GPU는 엔비디아 B200 성능 환산으로 약 3만5200장 규모다. 이 가운데 약 1만1600장이 실제 서비스에 투입됐으며, 나머지는 장비 설치와 전력·냉각·네트워크 구축을 거쳐 순차적으로 가동될 예정이다.
정부는 2028년까지 누적 5만장 이상으로 늘릴 계획이다. 정부와 삼성전자, SK그룹, 현대차그룹, 네이버 등 민관 전체는 엔비디아와 협력해 26만장 이상의 GPU를 공급받기로 했다.
문제는 확보한 GPU를 실제로 가동할 기반이다. AI 경쟁은 GPU 확보를 넘어 이를 안정적으로 가동할 전력 확보 경쟁으로 옮겨가고 있다. AI데이터센터는 고성능 연산장치를 대규모로 운영하는 데 더해 서버에서 발생하는 열을 식히기 위한 냉각설비까지 가동해야 돼 기존 데이터센터보다 높은 전력 밀도를 요구한다.
피지컬AI 시대에는 데이터센터뿐 아니라 공장과 물류센터에 설치된 로봇과 카메라, 센서, 엣지서버, 충전설비까지 동시에 전력을 사용한다. AI가 현실 공간으로 확산될수록 전력 수요가 데이터센터 내부에서 산업 현장 전반으로 넓어지는 구조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최근 분석에서 전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량이 2025년 약 485테라와트시(TWh)에서 2030년 약 950TWh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2030년에는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량은 현재 일본의 연간 전력 소비량을 웃도는 수준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됐다. 특히 AI에 특화된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는 같은 기간 세 배로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AI 서버의 전력 밀도도 빠르게 높아진다. IEA에 따르면 첨단 데이터센터의 서버 랙 한 대가 요구하는 최대전력은 2027년 일반 가구 65곳의 전력 수요와 비슷한 수준에 이를 수 있다. 서버 부하가 1초 안에 정격 용량의 50% 이상 오르내리는 현상이 나타나 전력 공급량뿐 아니라 계통 안정성과 전력 품질의 중요성도 커진다.
GPU는 구매계약을 통해 비교적 빠르게 확보할 수 있지만, 발전설비와 송·변전망은 계획 수립, 주민 협의, 인허가, 건설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
업계 관계자는 “GPU를 확보하더라도 데이터센터와 전력이 준비되지 않으면 실제 서비스에 활용하기 어렵다”며 “AI 산업의 병목이 칩에서 전력 인프라로 이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젠슨황 엔비디아 CEO. 사진=AFP(연합뉴스)
◆발전량보다 중요한 것은 ‘24시간 공급’
AI데이터센터에 필요한 것은 단순한 연간 발전량이 아니라 하루 24시간 중단 없이 공급되는 전력이다. 생성형 AI의 학습과 추론은 물론 피지컬 AI 서비스 운영도 연속적으로 이뤄지는 만큼, 순간적인 전력 부족이나 공급 중단은 서비스 장애와 생산 차질로 이어질 수 있다.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는 시간대와 기상 여건에 따라 발전량이 달라진다. 낮에 전력이 남더라도 야간이나 발전량이 줄어드는 시기에 데이터센터를 계속 가동하려면 원전과 가스발전,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다른 자원이 함께 뒷받침돼야 한다.
전력을 생산하는 것만으로도 부족하다. 발전소에서 데이터센터까지 전기를 보낼 송·변전설비가 갖춰지지 않으면 발전량에 여유가 있어도 공급이 제한된다. 특히 데이터센터가 특정 지역에 몰리면 국가 전체 발전설비와 별개로 지역 전력망이 수요를 감당하지 못할 수 있다. 발전원 확충과 함께 데이터센터 입지 분산, 송전망 조기 건설, ESS 설치가 필요한 이유다.
정부도 345킬로볼트(kV) 계통 여유 변전소 정보를 공개해 AI 데이터센터의 입지 분산을 유도하고, 비수도권 데이터센터의 전력계통영향평가를 신속히 처리할 방침이다. 기존 선로의 송전 용량을 늘리고 송전망과 계통 안정화 설비도 선제적으로 확충한다.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2038년 국내 데이터센터 전력수요를 총 6.2GW로 전망했다. 기존 증가 추세에 따른 수요 1.8GW에 AI 확산과 신규 데이터센터 건설로 발생할 추가 수요 4.4GW를 더한 규모다.
정부는 전력수급계획에 대규모 전력 수요시설의 지역 분산과 선제적인 전력망 확충 방안을 담았다. 다만 이후 2035년까지 18.4GW급 AI데이터센터 구축 계획이 추가로 제시된 만큼, 각 사업의 실제 전력 사용량과 가동률, 준공 시기를 반영해 장기 전력수요 전망과 지역별 계통 보강 계획을 재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도 지난 1월 세계경제포럼에서 AI 산업을 에너지, 반도체·컴퓨팅 인프라, 클라우드 데이터센터, AI 모델, 응용 서비스가 차례로 쌓인 ‘5단 구조‘로 설명했다. AI 모델과 서비스가 성장하려면 가장 아래층에 있는 에너지와 컴퓨팅 기반부터 갖춰져야 한다는 의미다.

국가 AI 데이터센터 내부 서버실. 사진=연합뉴스
◆다양한 현장의 로봇 충전 수요도 대비해야
국가 전력망을 확충한 뒤에는 로봇이 작동하는 현장의 전력설비를 준비해야 한다. 피지컬AI는 데이터센터에서 학습한 모델을 공장과 물류센터, 건설현장 등에 적용하고 현장에서 수집한 데이터를 다시 서버로 보내 성능을 높이는 구조로 작동한다. 중앙 데이터센터가 대규모 학습과 연산을 담당한다면 현장에서는 로봇과 카메라, 센서, 엣지서버, 관제시스템, 충전설비가 동시에 가동된다.
특히 휴머노이드와 자율이동로봇(AGV·AMR) 보급이 확대되면 특정 작업 주기에 맞춰 다수의 로봇이 동시에 급속 충전에 나서 공장의 최대 전력 수요가 급증할 수 있다.
모상우 포항공과대학교(POSTECH) 산업경영공학과 교수는 “수많은 피지컬AI 기기가 특정 작업 주기에 맞춰 동시에 급속 충전을 시도할 경우 공장이나 산업단지 내 특정 지역 전력망에 순간적인 과부하가 발생할 수 있다”며 “이는 고가 장비의 파손은 물론 생산 차질과 현장 안전 문제로 이어지는 만큼 지능형 전력 분산 인프라를 함께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로봇의 배터리 잔량과 작업 일정을 반영해 충전 시간을 분산하는 에너지관리시스템(EMS), 정전에 대비한 무정전전원장치(UPS), ESS 등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산업 현장에서 이처럼 로봇 수백 대가 동시에 급속 충전에 나서며 과부하 위험을 유발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로봇 자체의 배터리 한계에 있다. 선 없이 자유롭게 움직여야 하는 피지컬AI의 특성상 배터리 무게와 가동 시간의 병목은 현장 인프라 과부하를 심화시키는 핵심 요인이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현재 초기 휴머노이드 로봇들의 짧은 배터리 수명은 생산 라인 투입의 가장 큰 장벽이다. 중국 유니트리의 휴머노이드 ‘Unitree H1’은 약 0.85kWh급 배터리 팩을 탑재하고도 움직임이 없는 정적 작동 시간이 4시간 미만에 불과하다. 테슬라의 ‘옵티머스(Gen 2)’ 역시 2.3kWh 규모의 하이니켈 배터리 시스템을 갖췄지만, 실제 걷고 움직이는 동적 작업에 투입되면 단 2시간 만에 방전되는 한계를 보였다.
작업조당 최소 8시간 연속 근무하는 공장 라인에 로봇을 온전히 투입하려면 근무 시간 중 최소 3~4번의 충전 대기나 배터리 교체가 필수적인 셈이다. 가동 시간을 늘리기 위해 배터리 용량을 키우면 로봇 자체가 무거워져 구동 에너지를 더 소모하게 되는 ‘배터리 무게의 역설’에 빠진다.
배터리 기술의 이 같은 한계는 공장이나 물류창고처럼 안정적인 전력망이 갖춰진 실내보다 인프라가 전무한 외부 환경에서 더 뼈아프게 작용한다. 건설현장과 농업, 재난 대응처럼 고정된 전력설비가 부족한 환경에서는 이동형 배터리와 현장형 충전장치, 분산전원 확보 여부가 로봇의 가동시간과 운영 범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결국 로봇 하드웨어 성능 못지않게 이를 뒷받침할 현장 충전·전력 인프라를 함께 구축해야 피지컬AI를 산업 현장에 안정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지난 6월20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취임 1주년 출입기자 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피지컬AI를 움직이는 또 하나의 핵심 축은 통신망이다. 로봇과 카메라, 센서가 수집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주고받고 관제시스템이 여러 대의 로봇을 동시에 제어하려면 안정적인 네트워크가 필수적이다.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지난 6월20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AI 인프라를 입체적으로 봐야 한다”며 “AI 데이터센터 운영에는 GPU뿐 아니라 클러스터링 역량, 전력, 냉각 장비 등이 모두 중요하고 통신 인프라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어 “에이전틱 AI와 피지컬AI 시대에 AI가 더 많은 토큰을 생산하고 소비할 것이고 그 기반에 통신 인프라가 필수적”이라며 “한국이 AI 역량을 해외에 수출하는 국가가 되기 위해 통신과 해저케이블까지 고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피지컬 AI에서는 빠른 다운로드 속도만큼이나 끊김 없는 연결과 초저지연, 높은 전송 신뢰성이 요구된다.
모상우 포항공과대 교수는 “생성형AI는 텍스트 출력이 수 초 늦어져도 이용자 불편에 그칠 수 있지만 피지컬AI는 짧은 지연이나 오작동도 실제 충돌과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며 “단일 로봇의 온디바이스 연산에 병목이 생기거나 협동 로봇 간 통신이 지연되면 기기가 작업 시점을 놓쳐 물류·제조 공정 전체가 중단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공장과 물류센터에서는 산업용 유선망과 5G 특화망, 와이파이, 엣지컴퓨팅을 현장 특성에 맞게 결합해야 한다. 즉각적인 판단이 필요한 데이터는 현장과 가까운 엣지서버에서 처리해 중앙 데이터센터까지 데이터를 보내는 데 따른 통신 지연을 줄이고 네트워크 부담도 낮출 수 있다.
모든 판단을 중앙 데이터센터에 의존하는 방식도 한계가 있다. 외부 통신망에 장애가 발생하더라도 로봇이 안전하게 멈추거나 일부 작업을 이어가려면 현장 내부에서 판단할 수 있는 엣지컴퓨팅 환경이 함께 필요하다.
반면 건설현장과 농지, 산지, 재난지역처럼 작업 구역이 계속 바뀌는 환경에서는 고정형 기지국이나 유선설비를 설치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로봇과 드론, 차량, 작업자 단말이 서로 신호를 중계하는 메시(Mesh) 네트워크도 보완 기술로 활용될 수 있다.
다만 메시망은 단말 수가 늘어날수록 통신 경로 관리가 복잡해지고 대용량 영상 전송에도 제약이 생길 수 있다. 메시망이 5G나 6G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5G 특화망과 와이파이, 위성통신 등과 현장 여건에 맞춰 결합돼야 한다는 분석이다.
업계에서는 6G 상용화만 기다리기보다 현재 활용할 수 있는 통신기술을 산업 현장에 맞게 조합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피지컬AI 시대의 통신 경쟁력은 특정 통신기술을 얼마나 빨리 도입하느냐보다 현장에 필요한 연결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구현하느냐에 달렸다는 것이다.

LG전자 스마트 팩토리. 사진=LG전자
◆로봇보다 먼저 깔아야 하는 현장 인프라
피지컬AI 경쟁은 더 뛰어난 AI 모델이나 GPU를 확보하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생성형AI가 주로 디지털 환경에서 텍스트와 이미지 등의 결과물을 만들어낸다면, 피지컬AI는 센서로 현실을 인식하고 AI가 판단한 뒤 기기를 움직이는 과정을 연속적으로 반복한다. 결국 센서, AI 모델, 통신망, 제어장치 중 하나에만 병목이 생겨도 전체 시스템의 성능이 마비된다.
정부도 AI데이터센터와 피지컬 AI를 같은 메가프로젝트로 묶어 전력, 용수, 통신, 데이터 등 기반시설 확충을 추진한다. 업계에서는 발전설비와 송전망, 엣지컴퓨팅, 5G 특화망, 충전설비를 별개 사업이 아닌 피지컬AI 산업을 구성하는 하나의 기반 체계로 연결해야 한다고 본다. 피지컬AI는 제조업을 넘어 물류, 건설, 농업, 돌봄, 국방 등 전 산업으로 확산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인프라 역시 각 산업과 현장의 특성에 맞게 구축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모 교수는 “국내 피지컬AI 산업이 성장하려면 로봇 하드웨어와 알고리즘 고도화뿐 아니라 이동성과 실시간성이라는 물리적 제약을 지탱할 기반 환경이 균형 있게 구축돼야 한다”며 “저전력 엣지 반도체 생태계와 순간 전력 피크를 완화할 스마트그리드, 통신 병목을 관리할 5G 특화망 등 현장 인프라를 동시에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출처: [더비즈] https://www.the-biz.co.kr/news/articleView.html?idxno=7248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