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재생에너지 문턱 낮추는 에이치에너지
전력 수요는 빠르게 늘고 있지만, 재생에너지 공급 확대는 여전히 입지와 주민 수용성의 벽에 부딪혀 있다. 산을 깎거나 농지를 전용하는 대규모 태양광 발전소는 환경 훼손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고, 송전망 확충에도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다. 재생에너지 공급을 늘려야 한다는 방향에는 이견이 적지만, 어디에 어떻게 발전소를 지을 것인지를 둘러싼 갈등은 곳곳에서 반복되고 있다.
함일한 에이치에너지 대표가 주목한 것은 전국 산업단지와 창고, 축사, 상가 등에 흩어진 ‘남는 지붕’이다. 대형 발전소를 새로 짓기보다 이미 존재하는 건물 지붕을 발전 자산으로 바꾸고, 이를 플랫폼으로 묶으면 재생에너지 공급의 병목을 풀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는 “재생에너지가 주류 에너지원이 되려면 롱테일 자원을 모아 태산을 만드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며 “전국에 흩어진 유휴 지붕 자원을 플랫폼으로 연결하면 하드웨어 증설 없이도 친환경 전력을 신속하게 조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2018년 설립된 에이치에너지는 유휴 지붕을 태양광 발전 자산으로 바꾸고, 이를 투자·운영·전력 거래까지 연결하는 재생에너지 플랫폼 기업이다. 주요 서비스로는 ‘솔라쉐어’, ‘모햇’, ‘솔라온케어’ 등이 있다
함 대표는 에이치에너지를 “지붕형 태양광 발전소를 짓고 관리하며 전기를 판매하는 과정을 에어컨 설치 수준으로 단순하고 투명하게 만드는 테크 기업”이라고 설명했다. 복잡한 설계와 인허가, 시공, 운영관리, 정산을 플랫폼으로 표준화해 개인과 기업이 재생에너지 시장에 쉽게 참여하도록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 유휴 지붕 태양광, AI가 사업성 따진다

함 대표는 기존 소규모 태양광 시장의 가장 큰 문제로 ‘설치 이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구조’를 꼽았다. 그는 “기존 시장은 가격은 부르는 게 값이었고, 시공사는 공사 마진만 챙겨 떠나기 바빴다”며 “문제가 생기면 하청 업체는 원청에 책임을 미루고, 원청은 이미 폐업한 뒤 새 사업자를 내는 일도 허다했다”고 지적했다.
함 대표가 보는 재생에너지는 단순한 친환경 전원이 아니다. 전력 수요가 산업 경쟁력의 핵심 변수로 떠오른 만큼, 누가 에너지 자산을 소유하고 그 수익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의 문제이기도 하다.
소규모 지붕 태양광이 확산되지 못한 배경도 이와 맞닿아 있다. 현장 실사와 건물주 설득, 전기·구조 도면 확보, 인허가 서류 작업까지 거쳐도 실제 계약으로 이어지는 비율은 낮았다. 함 대표는 기존 방식으로 지붕 태양광 사업을 추진할 경우 계약 전환율이 통상 1~3% 수준에 그친다고 설명했다.
결국 실패한 부지 조사 비용이 성공한 사업의 원가에 얹혔다. 대형 사업자들이 작은 지붕을 외면하고 대규모 부지 위주의 개발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함 대표는 “전통적인 대형 건설·시공 구조에서는 이 거대한 매몰 비용이 성공한 3%의 구축 비용에 부풀려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에이치에너지는 이 비용 구조를 AI와 데이터로 낮추겠다는 구상이다. 유휴 지붕을 발굴하는 ‘솔라쉐어’에 AI 에이전트 ‘헬리오스’를 적용해 사업성 검토와 설계 과정을 자동화하는 방식이다. 건물주가 주소를 입력하면 헬리오스가 위성지도를 판독해 지붕의 방위각과 경사각, 일사량 등을 분석하고 사업성을 평가한다. 이후 설계와 인허가 서류 작업까지 자동화해 기존 엔지니어링 인력에 의존하던 과정을 줄인다.
함 대표는 “작은 건물 지붕에 태양광 하나를 올리려 해도 비싼 전문 설계 업체를 부르고 복잡한 관공서 인허가 서류를 사람이 일일이 처리해야 했다”며 “에이치에너지는 이 장벽을 AI 플랫폼으로 제거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붕 태양광은 노지 태양광보다 주민 수용성 측면에서도 장점이 있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산림이나 농지를 훼손하지 않고 이미 존재하는 건물을 활용할 수 있어서다. 계통 측면에서도 건물이 지어지는 과정에서 이미 전력망과 연결돼 있어 추가 송전망 확충 부담을 상대적으로 낮출 수 있다고 봤다.
함 대표는 “유휴 지붕 시장이 활성화되면 산림이나 농지를 훼손하지 않고도 재생에너지 공급을 늘릴 수 있고, 송배전망과 대형 발전소 구축에 따른 사회적 비용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 지붕 발굴부터 운영·거래까지…플랫폼으로 묶은 재생에너지

에이치에너지 플랫폼은 지붕 발굴, 투자 연결, 발전소 운영, 전력 거래로 이어진다. 솔라쉐어가 전국의 유휴 지붕을 발굴하고, 모햇이 발전소 구축을 위한 투자 재원을 연결한다. 이후 솔라온케어가 발전소를 AI로 관리하고, 솔라쉐어바로가 기업의 재생에너지 사용과 전력 거래를 지원한다.
핵심은 개별 서비스를 따로 운영하는 데 있지 않다. 유휴 지붕 발굴부터 투자 연결, 발전소 운영관리, 전력 거래까지 하나의 흐름으로 묶어 기존 소규모 태양광 시장의 단절을 줄이는 데 있다.
이 가운데 재생에너지 투자 플랫폼 ‘모햇’은 개인 참여형 서비스라는 점에서 눈에 띈다. 모햇은 개인이 협동조합 방식으로 출자해 전국의 지붕형 태양광 발전 자산에 참여하고,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 판매 수익을 배분받는 구조다.
그동안 태양광 투자는 토지나 건물을 보유했거나 직접 설비를 설치할 수 있는 사업자 중심으로 이뤄졌다. 반면 모햇은 개인이 멀리 떨어진 지붕형 태양광 발전소에도 간접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해 재생에너지 투자 접근성을 낮춘 것이 특징이다. 회사 측에 따르면 올해 6월 기준 모햇의 누적 투자금은 5000억원을 넘어섰다.
함 대표는 모햇을 “국민 누구나 에너지 자본의 주인이 될 수 있도록 만든 재생에너지 투자 플랫폼”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대형 신재생에너지 개발 사업은 막대한 비용이 수반되기 때문에 자본력을 갖춘 글로벌 사모펀드나 대기업 금융 자본이 먼저 시장을 장악했다”며 “일반 국민은 에너지 투자에서 소외돼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모햇은 국민 누구나 100만원만 참여하더라도 그 자금이 한 곳의 발전소가 아니라 전국 수천 개 소형 지붕 발전소에 나뉘어 투자되도록 설계했다”고 덧붙였다. 다만 모햇은 투자 구조인 만큼 수익이 확정되거나 원금이 보장되는 상품은 아니다. 발전량과 전력 판매가격, 운영비 등에 따라 수익이 달라질 수 있어 투자 전 구조와 위험 요인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빠른 성장 과정에서는 금융 안정성도 과제였다. 태양광 발전소는 자금이 장기간 현물 자산에 묶이는 구조인 만큼, 조합원 증가에 따른 동시 상환 요구 가능성이 검증 대상이 됐다.
함 대표는 “모햇의 규모가 빠르게 성장하면서 금융당국과 자본시장에서 뱅크런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다”며 “대규모 협동조합이 가질 수 있는 지배구조의 한계와 자금 쏠림 리스크를 인정하고 보완책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에이치에너지는 한 조합의 규모가 일정 수준을 넘으면 모집을 마감하고 신규 조합을 여는 분할 관리 방식을 택했다. 또 기관 자금 비중을 70%, 조합 자금 비중을 30% 수준으로 설정해 재무 안정성을 관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솔라쉐어는 모햇이 투자할 지붕형 태양광 발전 자산을 확보하는 기반 서비스다. 공장과 창고, 축사, 상업건물의 유휴 지붕을 발굴해 태양광 발전소 부지로 전환하고, 건물주는 초기 투자나 운영 부담 없이 지붕 임대 수익을 얻는 구조다.
설치 이후에는 솔라온케어가 발전소 운영관리를 맡는다. 솔라온케어는 발전소 데이터를 분석해 미세 효율 저하와 설비 이상을 원격으로 진단한다. 회사 측은 AI가 태양광 패널의 전류와 전압 데이터를 분석해 주요 고장 유형을 판별하고, 고장 징후가 감지되면 현장 안전관리자에게 조치 가이드를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함 대표는 “기존에는 문제 해결까지 열흘 넘게 걸리던 발전소 다운타임을 2~3일 수준으로 줄여 발전사업자의 수익을 보호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 투자 넘어 전력 거래로…“햇빛으로 산유국 꿈꾼다”

에이치에너지의 다음 목표는 전력 거래다. 회사는 국내에서 RE100 전기가 필요한 기업을 대상으로 공장 지붕에서 생산된 전기를 공급하는 B2B 전력 상거래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기업이 초기 설비 투자 없이 지붕에서 생산된 재생에너지를 쓰고, 사용한 전력량에 따라 비용을 지불하는 구조다.
함 대표는 “국내에서는 RE100 전기가 필요한 기업을 대상으로 공장 지붕에서 생산된 전기를 공급해 한전 요금 대비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하는 B2B 전력 상거래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해외에서는 일본 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일본은 전력 시장이 개방돼 민간 전력 거래가 가능하다는 점에 주목했다. 에이치에너지는 현지 기업과 컨소시엄을 맺고 ESS를 활용해 전기요금이 낮은 시간대에 충전하고, 비싼 시간대에 방전하는 전력 서비스 모델을 실증 중이다.
함 대표의 이력은 에이치에너지의 사업 모델과 맞닿아 있다. 그는 포항공과대학교 수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컴퓨터비전 석사를 받았다. 이후 국내 한 대기업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출발해 환경·에너지 사업팀장을 맡으며 국내 초창기 대형 태양광 사업을 경험했다.
대형 태양광 개발 사업을 리드하며 그는 기존 태양광 시장의 구조적 한계를 봤다고 했다. 소수 원청사가 설계와 인허가, 자재 조달 거래선을 쥐고 중간 수수료를 가져가고, 실제 시공을 담당하는 지역 영세 시공사는 충분한 마진 없이 공사를 맡는 구조였다는 설명이다.
설치 이후 문제도 컸다. 기존 소규모 태양광 시장은 ‘짓고 나면 끝’이라는 공사 중심 논리에 가까웠다. 발전소에 문제가 생겨도 하청 업체와 원청이 책임을 미루거나, 사업자가 폐업해 사후관리가 어려운 경우도 있었다. 함 대표는 “기술이 없어서가 아니라 판매 이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구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함 대표는 이후 실리콘밸리에 본사를 둔 빅데이터 테크 스타트업에서 COO와 CMO로 일했다. 이 시기 야놀자와 배달의민족 같은 O2O 플랫폼 기업들이 오프라인 시장의 비효율을 해체하고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봤다. 플랫폼과 데이터 사이언스를 전력 시장에 적용할 수 있다는 확신도 이때 생겼다.
그는 “플랫폼과 데이터 사이언스 사상을 전력 시장에 이식한다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수 있다고 봤다”며 “전기를 모르는 수학자와 개발자가 모여 한전 중심의 폐쇄적인 전력시장을 모두가 참여 가능한 플랫폼 경제로 전환하겠다는 것이 창업 선언이었다”고 말했다.
장기적으로 함 대표가 그리는 에이치에너지의 모습은 ‘전기 커머스 플랫폼’이다. 전국에 흩어진 소규모 지붕 자원을 플랫폼으로 연결하고, 여기서 생산되는 전기를 유연하게 사고파는 시장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함 대표는 재생에너지를 단순한 환경 담론으로만 보지 않는다. AI 산업이 빠르게 커지면서 전력 인프라가 산업 경쟁력의 핵심으로 떠오른 만큼, 재생에너지도 자본의 소유와 분배 구조를 바꾸는 관점에서 봐야 한다는 생각이다.
함 대표는 “과거 산업화 시대에는 물리적 한계로 인해 산유국의 꿈을 이루지 못했지만, 다가오는 넷제로 시대에는 우리의 햇빛과 바람을 통해 아시아의 산유국이 될 수 있다”며 “전 국민이 미래 에너지 자산의 주인이 되고, 지역에서 생산된 수익이 지역 경제로 선순환하는 에너지 공유시장을 완성해 미래 에너지 주권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출처: [브릿지경제] https://www.viva100.com/article/20260628500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