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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경영공학과 정우성 교수, 탄소중립 구현할 ‘인공 태양’, 치열해지는 핵융합 선점 경쟁(21.11.05)
전세계 곳곳에서 ‘인공(人工) 태양’을 만들기 위한 경쟁이 뜨겁다. 태양이 빛과 열을 내는 원리를 지구에 구현한 ‘핵융합(核融合) 발전’으로 인류를 에너지 문제에서 영원히 해방시키는 것이 이들의 목표이다. 수십년간 국가와 국제기구 차원에서 추진해온 핵융합 발전에 민간 스타트업들이 대거 뛰어들면서 2045년 이후로 예상되던 상용화 시점이 크게 앞당겨질 것이라는 기대감도 높다.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구글, 쿠웨이트 투자청 등이 핵융합 스타트업에 막대한 돈을 쏟아붓고 있다. 영국 원자력에너지청이 지난달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핵융합 스타트업은 35곳이고, 이 중 절반 이상이 5년 이내에 생겼다. 이들이 끌어모은 투자금만 18억달러(약 2조1200억원)에 이른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최근 핵융합 열풍을 소개하며 “핵융합이 드디어 주류 에너지 시장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지구상에 무한한 꿈의 에너지
핵융합은 핵에너지를 사용하지만 원자력 발전에 활용하는 핵분열과는 정반대 원리로 작동한다. 핵분열은 우라늄이나 플루토늄의 핵이 분열하면서 나오는 에너지를 이용한다. 반면 핵융합은 수소가 헬륨으로 합쳐지면서 생기는 에너지를 쓴다. 태양이 빛과 열을 내는 것이 바로 내부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수소의 핵융합 반응 덕분이다. 이 때문에 핵융합 발전을 인공 태양이라고 부른다. 핵융합 발전로를 만드는 원리는 이렇다. 수소는 원래 중성자 없이 양성자와 전자로만 구성돼 있다. 하지만 바닷물에는 일정 비율로 중성자를 갖고 있는 중수소가 포함돼 있다. 이 중수소와 인위적으로 만든 삼중수소(중성자 2개짜리 수소)를 1억도 이상 고온에서 충돌시키면 수소끼리 결합하면서 헬륨이 되고, 필요 없어진 중성자가 튀어나온다. 이 중성자들이 핵융합로 안쪽 벽(블랭킷)에 부딪히면서 생기는 에너지로 물을 데워 발전기를 돌리면 전기가 생긴다. 이론적으로 핵융합 에너지의 효율은 현재 가장 효율이 높은 발전 방식인 원자력의 7배가량이다. 수소 1㎏으로 핵융합 반응을 일으키면 석탄 8t을 사용한 화력발전만큼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 무엇보다 중수소는 지구상에 무한에 가깝게 존재하고, 발전 과정에서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도 나오지 않는다. 핵융합을 ‘꿈의 청정 에너지’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기술 난제 극복’ 장담하는 스타트업들
핵융합 발전의 원리는 이미 1950년대 옛 소련에서 개발됐다. 이후 전 세계 각국이 핵융합 에너지의 가능성에 투자했지만, 좀처럼 진전이 이뤄지지 않았다. 1억도에 이르는 고온을 만드는 기술, ‘플라스마’(초고온에서 전자와 원자핵이 분리된 상태)를 용기 안에 가둬두는 강력한 자석 기술, 안정적으로 플라스마 현상을 조절하는 기술 등 워낙 난관이 많았기 때문이다. 미국 시사지 뉴요커가 “핵융합 발전에는 ‘난도 불변의 법칙’이 있다”고 할 정도다. 하나의 난관을 넘어서면 그만한 난관이 계속 등장한다는 얘기이다.
하지만 최근 이런 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다고 자신하는 민간 스타트업들이 대거 등장했다. 미국 MIT 교내 벤처로 출발한 코먼웰스퓨전시스템스는 ‘스파크(SPARC)’라는 소형 핵융합로를 2025년까지 완성할 계획이다. 현재 핵융합 발전로에는 영하 273도에 가까운 환경에서 작동하는 초전도(전기저항 제로) 자석을 쓴다. 전기저항이 있으면 엄청난 열이 발생해 정상적인 핵융합로 구동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먼웰스퓨전시스템스는 이보다 훨씬 높은 영하 173도에서 구동하는 ‘고온 초전도 자석’을 만들었다. 이 업체는 “고온 초전도 자석은 기존보다 훨씬 강한 자기장을 만들 수 있어 핵융합 발전소의 크기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고 했다. 구글과 쿠웨이트 투자청이 8억8000만달러를 투자한 미국 TAE테크놀로지스는 ‘코페르니쿠스’라는 핵융합로 내부에서 플라스마의 움직임을 이용해 자체적인 자기장을 생성하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또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가 10년 넘게 투자한 캐나다 제너럴퓨전은 2025년까지 영국 옥스퍼드 인근에 대규모 실험로를 건설하고 있다. 민간 업체 최초로 플라스마 온도 1억도를 달성한 미국 헬리온 에너지는 “2040년까지 전세계 발전량의 20%를 핵융합으로 대체할 수 있다”고 장담하고 있다.
◇영국, 첫 상용 핵융합로 추진
국가 차원의 핵융합 투자도 확대되고 있다.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정부가 설립하거나 지원하는 핵융합 실험 시설만 100곳이 넘는다. 영국 정부는 지난달 중순 세계 최초의 핵융합 상용 발전소인 ‘스텝’을 지을 부지 후보지 다섯 곳을 선정했다. 2억파운드(약 3225억원)를 투자해 내년 말 착공한다. 중국은 달에 풍부한 헬륨-3를 이용한 핵융합 연구까지 진행하고 있다. 핵융합 기술을 활용해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물론, 미국과의 우주 경쟁에서도 앞서가겠다는 것이다. 미국 로런스리버모어 국립연구소는 최근 192개의 레이저를 이용해 핵융합 에너지의 발전 효율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렸다고 발표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핵융합 열풍을 일으킨 것은 결국 탄소중립 시나리오”라고 했다. 한국과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각국은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앞다퉈 내놓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기술로는 달성하기 힘든 비현실성인 목표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정우성 포스텍 산업경영공학과 교수는 “현재의 2050년 탄소중립 시나리오는 신재생 에너지 확대와 수소에너지 같은 신기술의 등장이 필수적인데, 핵융합은 실현되면 신재생 에너지를 보조 수단으로 만들고 핵심 에너지원이 될 수 있는 엄청난 영향력을 갖고 있다”고 했다.
물론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 원자력 학계 교수는 “핵융합 옹호론자들에게 핵융합 상용화 시기를 물어보면 언제나 ‘20년 뒤’라는 답이 돌아온다는 농담이 있을 만큼 핵융합은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핵융합 발전에서는 한국도 선진국]
2007년 완공한 핵융합로 KSTAR… 2025년 상용 운전기술 확보 목표
글로벌 핵융합 경쟁에서 한국은 어느 정도 위치에 있을까. 유석재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원장은 지난 1일 “플라스마 유지 기술과 소재·부품 제작 측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봐도 된다”고 말했다. 한국은 2007년 한국형 핵융합로(KSTAR)를 독자 개발해 대전 대덕단지에서 운용하고 있다. 미국·러시아 등보다 늦게 뛰어들었지만 KSTAR는 핵융합의 오랜 난제를 여러 건 해결해냈다. KSTAR는 지난해 1억도의 초고온 플라스마를 20초간 안정적으로 유지하면서 세계 기록을 세웠다. 유 원장은 “올해는 30초간 유지하는 데 성공했고 현재 검증 작업이 진행 중이다”라고 말했다. 물리학자들은 핵융합 발전이 24시간, 365일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최소 기준으로 ‘300초간 플라스마 유지’를 꼽는다. 유 원장은 “플라스마에서 여러 가지 현상이 일어나는데, 모든 현상이 300초 내에 다 일어난다”면서 “2025년 300초 달성이 목표”라고 했다.
KSTAR에서 확보한 기술과 연구 성과는 프랑스 남부 카다라시에 건설되고 있는 국제핵융합실험로(ITER)에 적용된다. 한국을 비롯해 미국·일본 등 7국은 ITER를 2025년까지 완공하고, 2035년이면 핵융합 발전 상용화를 구현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무려 18조원이 투입되는 인류 역사상 최대의 과학 프로젝트이다.
유 원장은 “ITER는 참여국에만 기술을 개방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에, ITER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앞선 핵융합 기술력을 보유하게 된다”고 말했다. KSTAR는 모든 부품과 장치를 현대중공업, 두산중공업 등 국내 기업들이 직접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얻은 기술로 국내 기업들이 지금까지 ITER에서 수주한 초전도 자석과 진공 용기 등만 6500억원 규모에 이른다.
출처: 조선일보(https://www.chosun.com/economy/tech_it/2021/11/05/M6WQEEVITVC4LKYVYJCZZZUHGI/)